포스팅하기 전에 미리 말씀드립니다.
참고로 이분이 대통령 되어서 포스팅하는 겁니다. 아무런 의미 없습니다. 만약 누가 대통령이 되었어도 포스팅할 의도가 있었음을 말씀드리며, 포스팅 내용 중에서는 편리성을 위해 존칭은 생략하겠습니다.
■20대 대통령 윤석열
치열한 대선이였다. 새벽 까지 투표 결과를 지켜보던 결과 1% 차이도 나지 않는 박빙으로 윤석열 후보가 당선 되어 20대 대통령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그는 어떤 행보를 걸어 왔는지 간단히 알아보자.
■유년시절
윤석열은 1960년 12월 18일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에서 태어났다. 성장은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성장을 하였는데
아버지는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설립 멤버시며 연세대 명예교수 출신이셨다. 게다가 어머니는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셨던 분이라 두 분 다 어느 정도 학문적인 위치가 있으시다 보니 나름 부유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구수한 9 수생
윤석열의 별명이다. 윤석열은 1983년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했지만 1991년에 33회 사범시험을 통과했다. 서울대 법학과 학사, 석사 출신이지만 아쉽게도(?) 디렉트로 패스하지는 못했다. 사법시험을 9수나 했는데 술과 사람 만나는걸 워낙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시험에 자주 떨어져 이런 불명이 붙은 것 같다.
술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먹는 것도 좋아하는 대식가라 한다. 젊을 때 하루 5끼를 먹을 정도. 지금도 키 178 몸무게 90kg 인 것을 보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대선 전에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음식을 하는 모습이 종종 있었는데, 가장 잘하는 음식은 김치찌개와 소고기 뭇국, 계란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라면 물이 한강으로 끓인 장면을 보곤 라면 마니아(?)들에게 비판받기도 하였다.
■대통령이 싫어하는 검사
그의 검사생활은 1994년 대구 지방검찰청에서 검사생활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는 권력 앞에서도 당당히 고개를 들었던 검사라는 점에서 좋은 이미지를 얻었는데 활동 경력을 간단하게 요약해보면 이렇다.
- 1999년 김대중 정부 시절 박희원 치안감을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
-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안희정, 강금원 구속수사.
-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정몽구 회장 구속수사.
- 2008년 이명박 대통령 BBK 특검 참여.
- 2013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압수수색.
■좌천
그의 패기 있고 당당한 모습이 모두 통하진 않았다. 보다시피 각 대통령 정부 시절 때마다 나라를 시끄럽게 한 사건들을 도맡아 하다 보니 사실 좋게 보진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 수사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을 흔들 수준으로 적극적인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관이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조선일보의 스캔들 기사를 빌미로 쫓겨나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윤석열도 마찬가지였다. 국정원 직원들의 압수수색 및 체포영장 청구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팀에서 배제돼버리는 상황이 왔다. 결국 2013년 11월 9일 대검 감찰위원회는 윤석열에게 국정원 수사과정에서 상부 보고를 누락하는 등 절차를 어겼다며 1개월 정직과 감봉의 징계가 내려졌다.
이후 2014년 1월 대구 고등검찰청 검사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물론 공무원은 인사이동이 전국구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지방으로도 내려갈 수 있지만 이건 누가 봐도 좌찬성 인사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2년 뒤에는 대전 고등검찰청 검사로도 발령을 받아 지방을 전전했다. 실상 그의 경력과 스펙만 따져보면 검사장 급의 승진을 해야 하지만 이런 식의 인사 이동은 실상 윗선에 찍힌걸로 밖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윤석열은 끝까지 의지를 꺾지 않았다. 지방을 돌고 있는 도중 2015년 2월에 국정원 사건에서 항소심 때 제출한 증거가 인정받아 원심을 깨고 2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이 적용되어 결과가 뒤집어졌다. 그로 인해 박근혜 정부에 흠이 나는 사태가 생겼으며 윤석열의 검사 커리어는 끝나기 직전까지 몰렸다. 이때 윤석열의 최고 명언 하나가 만들어 졌다.
이 사건 때
정갑윤 의원이 “조직을 사랑하느냐, 사람에 충성하는 것 아니냐”라고 묻자,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린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좌천에서 부활까지
좌천을 당하고 있던 시절 검찰총장으로 다시 올라와 권토중래(捲土重來)하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이 2가지다.
- 2016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팀에 합류.
- 2017 삼성 이재용 부회장 구속.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 문재인 정부에 의해 검찰총장으로 까지 임명되었다. 그 와중에도 정말 대단한 것은 여기서도 윤석열은 본인의 신념으로 검찰 생활을 꾸준히 이어 간 것, 간단히 말해서 커리어를 종합해보면 대통령과 한 번씩 부딪혔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갈등이 있었다. 물론 이런 것도 모두 “정부의 성공을 위해 내가 악역을 맡았다”라는 의견이었다.
■대통령 출마
이런 검찰 시절을 통해 권력 앞에 무릎 꿀지 않는 윤석열은 검찰 사퇴 후 정계를 입문하여 20대 대선 출마 선언을 하였다. 야당인 국민의 힘 대선 후보로 출마하며, 더불어 민주당의 대선 후보인 이재명과 0.7% 차이로 역대 최소 득표율 차이 당선이 됐다. 정말 개표율이 무려 99.2% 일 때 당선이 확정되었다. 그 정도로 엄청난 박빙이었다는 것이다.
■타이틀 부자
윤석열 대통령은 타이틀이 많은 대통령이다. 그만큼 많은 징크스를 깨고 대통령 당선이 됐었다. 그 타이틀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 최초 서울대 법과대학 출신 대통령
- 최초 서울 수도권 출신 대통령
- 최초 1960년 대생 대통령
- 최초 당선 시 부모님이 모두 생존한 대통령
- 최초 검사 출신 대통령
- 최초 무자녀 기혼자 대통령이자 무자녀 남성 대통령
- 재 6 공화국 이후 선출직 경력이 없는 대통령
- 가장 적은 득표율 차로 당선된 대통령
- 역대 대선 최다 득표를 받은 대통령
- 가장 많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대통령
-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대통령
- 영부인의 키가 가장 큰 대통령
- 최초 정상체중의 몸무게를 가진 영부인을 둔 대통령
■마치며
포스팅 작성 날 기준, 가장 적은 득표차로 당선이 되었고, 실상 검찰계에서는 으뜸 일수 있지만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당선이 되어도 많은 걱정이 많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많은 득표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고, 그만큼 국민 절반이 응원하여 받았으니 본인의 말대로 정치성향을 가리지 않고 통합을 이뤄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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